(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경기 전 어떻게 준비하냐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질문에 아르헨티나 매체 'D-스포츠 라디오'(D-Sports Radio)의 해설위원인 엔리케 마사야 마르케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는 이유가 있다.
88세의 고령에도 카타르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나선 마르케스는 해설자로 64년간 총 17번의 월드컵을 지켜봤다.
FIFA에 따르면 이보다 많은 월드컵을 경험한 미디어 종사자는 없다.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는 마르케스를 포함해 '장수 언론인'들의 공로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고 FIFA가 홈페이지에서 알렸다.
FIFA는 "그의 월드컵 여정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후 마르케스는 모든 대회를 찾았고 17번째인 이번 대회도 다루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신기록"이라고 치켜세웠다.
11월 20일에 태어난 그는 이번 월드컵 개막전을 해설하면서 생일을 맞는 흔치 않은 경험도 했다.
당시 FIFA는 트위터를 통해 그가 다뤘던 17차례 월드컵 개최국을 소개하는 특별한 축하를 보내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8세부터 신문을 배달하면서 언론인 직무를 시작했다는 그는 지역의 라디오 매체에서 행정 보조로 일하며 스포츠계 언론인들과 연을 맺었다.
아르헨티나 전설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마르케스는 이후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마침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정규직 해설자에게 사정이 생겼고, 열정을 불태우던 그가 현지에서 해설하는 기회를 받게 된다.
그는 "당시 항공기가 연료를 넣는다고 7번이나 멈췄다"며 "그러면 당장 묵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때 모든 일이 잘 풀린 게 기적"이라고 돌아봤다.
방송 기술도 오늘날보다 열악했다.
마르케스는 "전화 교환기에 연결해 아르헨티나로 해설을 전했다"며 "제대로 작동한 게 기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이후 '축구 황제'로 불리게 될 17세 소년 펠레의 '원맨쇼'를 눈에 담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콜롬비아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는 "펠레는 현상 그 자체였다"며 "당시 동료 선수들의 기술적 역량에 신체적인 강인함을 더해 브라질 축구에 대변혁을 일으켰다고 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월드컵의 '산증인' 마르케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꼽은 팀은 1974 서독 대회의 네덜란드였다.
요한 크라위프가 이끈 '토털 사커'의 네덜란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결승에서 게르트 뮐러와 프란츠 베켄바워가 공수에서 버틴 서독의 벽을 넘지 못했다.
마르케스는 "그 팀은 공을 정말 잘 돌렸다. 그들의 기술적 역량, 끊임없는 움직임, 신체적 여건이 마음에 들었다"며 "토털 사커를 제대로 표현한 훌륭한 선수들이었다"고 칭찬했다.
1950년대 중반 라디오를 넘어 TV 중계 해설로 진출한 그는 1990년대부터는 축구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등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마르케스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하는 방법도 필요하다"며 "기술을 다룰 수도 있어야 하고, 경기를 올바로 해석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이는 쉽지 않다. 항상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배우려고 해야 한다"고 짚었다.
마르케스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TV보다는 아직 라디오 중계가 좋다고 한다.
그는 "내 열정은 저널리즘보다는 축구에 맞춰져 있다"며 "TV가 나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15살 때부터 라디오에서 일했다는 걸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날 FIFA는 마르케스를 비롯해 라디오, TV 해설자, 사진 기자 등 8회 이상 월드컵을 전달해온 언론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했다.
브라질의 전설적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수상자로 나서 이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의 복제품을 전달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FIFA의 수장으로서 여러분께 영원히 감사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