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십자군 복장'으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가려고 했던 잉글랜드 팬들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지를 받았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5일(현지시간) 이날 예정된 잉글랜드와 미국 간 조별리그 B조 경기에서는 FIFA가 십자군 복장을 한 팬들의 입장을 제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FIFA는 더타임스에 "아랍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십자군 복장은 무슬림에게 불쾌할 수 있다"며 "우리는 모든 행사, 활동에서 차별 없는 환경을 꾸리고 다양성을 키우려 한다"고 밝혔다.
앞서 조별리그 1차전 이란전에서 일부 팬이 서양 중세 십자군처럼 사슬 갑옷, 투구를 착용하고 당시 잉글랜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복장으로 경기장에 들어가려다가 현장 요원들의 제지를 받는 장면이 소셜미디어 등에 공유됐다.
영국 매체들에 따르면 수십 년간 잉글랜드 팬들은 대표팀을 지지하는 뜻에서 이런 특별한 복장으로 경기장에서 응원을 펼쳐왔다.
월드컵 개막 후 이 십자군 복장으로 카타르 도하로 여행하는 팬들이 현지에서 자주 목격된다고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심지어 일부 팬들이 이 복장을 한 채 현지 공공장소, 대중교통 등에서 자국 국가인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를 불렀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칼을 차고 다니는 팬들도 있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영국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축구계의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킥잇아웃은 "화려한 파티용 옷이나 십자군을 나타내는 복장으로 월드컵 경기에 참석하는 건 카타르에서도,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팬들에게 조언하겠다"고 당부했다.
반(反)무슬림혐오 시민단체 텔마마 측도 "공개적인 음주나 십자군 복장을 하는 행동이 카타르 시민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팬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십자군 전쟁은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 주도로 조직된 그리스도교 원정대와 이슬람 세력 간 벌어진 종교전쟁으로, 1095년부터 십자군의 마지막 요새가 이슬람에 함락된 1291년까지 약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당시 서방 기독교 세력에게는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원정이었지만, 이슬람 세력에게는 '침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잉글랜드 역시 '사자심왕'이라 불리는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 전쟁에 출병, 이슬람 세력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