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잉글랜드, 독일 등 유럽 7개 팀이 차별에 반대하는 뜻을 담은 '무지개 완장'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 완장을 착용할 시 옐로카드를 주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이들 7팀은 공동성명을 내고 "FIFA가 각 팀 주장들이 완장을 찬다면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이 제재를 받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주장들에게 경기 중 완장을 차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례 없는 결정이 실망스럽다. 9월에 이 완장을 차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FIFA 측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며 "우리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포용이라는 가치의 강력한 지지자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보여주겠다"고 질타했다.
네덜란드축구협회는 별도 성명을 내고 "월드컵에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승리"라며 "우리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수백만명을 단결시키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앞서 잉글랜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웨일스, 스위스, 덴마크 등 7팀 주장들은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하트에 숫자 '1'이 적힌 '원 러브'(One Love)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했다.
'원 러브' 캠페인은 네덜란드가 2020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 앞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각종 인권 논란이 불거진 카타르에 항의하고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로 '원 러브' 완장을 찰 예정이었다.
FIFA는 선수가 사용하는 장비에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내포한 문구나 이미지가 담겨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개최지 카타르를 둘러싸고 이주노동자·성 소수자 인권 탄압 논란이 불거지자 FIFA는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동성애를 형사 처벌하는 카타르는 인권 문제로 유럽 등 서방과 대치 국면을 이어왔고, 잉글랜드와 독일은 이 문제와 관련에 가장 날카롭게 날을 세워 왔다.
이 두 팀의 주장인 해리 케인과 마누엘 노이어는 혹시 FIFA가 이런 규정 등에 따라 벌금을 물리더라도 이 완장 착용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경기 중 제재' 앞에서는 결국 물러서게 됐다.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들 7팀은 "벌금을 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떠나게 될 상황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자는 서방 팀들의 요구에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권고로 답했던 FIFA는 전날 돌연 사회적 의미를 담은 '자체 완장'을 내놨다.
유엔 산하 기관과 협력, 각종 가치를 담은 완장을 조별리그, 16강, 8강 등 대회 단계별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원 러브 완장과 같은 '차별 반대'는 8강의 주제다.
나머지 라운드에서는 이와 관련 없는 교육, 보건, 환경 보호 등이 주제로 채택됐다.
FIFA는 '옐로카드 제재' 사실이 알려진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포용적인 기구로 '원 러브'와 같은 마땅한 대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축구가 이런 대의를 실어 사회를 이롭게 하길 바라지만, 그 과정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규칙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