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가나축구협회의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합류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했던 이냐키 윌리엄스(28·아틀레틱 빌바오)가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아프리카 가족 여행'이었다.
가나 대표팀에 합류해 자신의 첫 월드컵 출전을 앞둔 윌리엄스는 17일(한국시간) BBC 아프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초 서아프리카 여행 기간 중 가나에 갔을 때 아주 어린 아이들이 벽돌을 옮기는 모습을 봤다. 나는 동생에게 '우리 부모님이 유럽으로 망명하지 않고 이곳에 살았다면,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래도 이 아이들이 TV로 내 모습을 본다면 잠시라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나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윌리엄스의 가나행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윌리엄스의 동생 니코 윌리엄스(20·아틀레틱 빌바오)는 스페인 대표팀에 뽑혀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한다.
'형' 윌리엄스는 "내가 스페인 대표팀에 뽑힌 건, 아주 오래 전(2016년) 일이다. 스페인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건 불가능했다"며 "동생은 스페인 대표팀에 뽑혔다. 나와 동생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라고 전했다.
'윌리엄스 형제'는 2010년과 2014년 월드컵에 출전한 케빈-프린스 보아텡(가나)·제롬 보아텡(독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다른 국가 소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형제로 기록된다.
다만 어머니가 다른 보아텡 형제와 달리 윌리엄스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윌리엄스의 부모는 30년 전에 가나를 떠나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트럭의 짐칸에 올라 가나를 벗어난 뒤, 사막을 횡단해 스페인까지 갔다.
윌리엄스는 "부모님이 유럽에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며 "축구를 시작할 방법도 몰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윌리엄스 가족은 '가나의 문화'는 유지했다.
그는 "내 형제들은 밖에서는 바스크어를 쓰지만, 집에 오면 부모님들이 가나에 계실 때 쓰던 트위어로 말한다"며 "나는 스페인과 가나의 문화를 모두 체험했다. 스페인에서 자랐지만, 가나 출신 부모님의 영향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나 국적'을 택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윌리엄스는 가나 대표팀 합류에 관해 "가나를 100% 이해하는 선수를 대신해 내가 월드컵에 출전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가나축구협회는 윌리엄스를 향한 '구애'를 멈추지 않았다.
서아프리카 여행 등을 통해 가나와 조금 더 가까워진 윌리엄스는 올해 7월 가나 대표팀 합류를 공식 선언했다.
윌리엄스는 "가나 대표팀을 택하면 스포츠 외 내 개인적인 일상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당연히 무척 어려운 결정이었다"라고 털어놓으며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것을 원하신다. 할아버지의 당부가 가나 대표팀 합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윌리엄스의 합류로 가나 대표팀은 '경험'을 얻었다.
윌리엄스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빌바오에서 286경기에 출전해 58골을 넣었다.
윌리엄스는 "나는 9년 가까이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뛰고 있다. 현재 가나 대표팀 중 국외리그 경험이 가장 많은 선수"라며 "내 경험이 가나 대표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 대표팀도 가나 최전방에 설 윌리엄스를 상대해야 한다.
한국은 가나, 포르투갈, 우루과이와 H조에 속했다. 가나와는 한국시간으로 28일 오후 10시에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