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외국인 타자 윌 크레익은 올 시즌 1루수로 85타석, 우익수로 68타석을 나섰다.
내야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가 있긴 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내야와 외야를 이처럼 동등한 비율로 소화하는 케이스는 사실 흔치 않다.
크레익은 1루 수비는 안정적인 데 반해 외야 수비는 불안한 편이다.
크레익을 1루수로 못 박으면 되지만 그러면 박병호와 포지션이 겹친다. 여기서 키움의 고민이 시작된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 문제를 박병호가 부진하면 크레익에게 1루를 맡기고, 박병호가 살아나면 크레익을 외야수로 돌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기형적이긴 하지만 팀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연한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올 시즌 최악의 부진 속에 주장 완장까지 반납한 박병호는 구단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난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발생했다.
홍 감독은 크레익을 4번 타자로 배치하면서 그에게 1루수를 맡겼다. 박병호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시즌 내내 바닥을 치던 박병호가 최근 10경기에서 타율 0.342에 3홈런 8타점으로 극적인 반등에 나선 시점이었다.
크레익을 1루수로 써야 한다면 박병호를 지명타자로 돌리면 된다. 하지만 홍 감독은 최근 팀에서 가장 잘 치는 박병호를 아예 경기에서 뺐다.
홍 감독의 원칙 없는 기용이 논란이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홍 감독은 방역 수칙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선발 투수 안우진과 한현희를 잔여 시즌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말을 바꿔 거센 비난을 받았다.
홍 감독은 "두 선수를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는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었다"고 해명했다.
당시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비단 안우진, 한현희뿐만 아니라 내야수 김혜성 포지션과 관련해서도 홍 감독은 좌충우돌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았던 김하성이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한 뒤 그 자리는 김혜성이 물려받았다.
하지만 김혜성이 유격수 수비에서 실책을 연발하자 홍 감독은 9월 들어 김혜성을 유격수에서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키움은 유격수 돌려막기에 나섰지만, 아직 마땅한 재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 감독은 시즌이 종료되기도 전에 김혜성을 유격수로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안우진, 한현희를 남은 시즌 동안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발언이다.
유격수는 전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육성이 어려운 포지션으로 손꼽힌다.
누가 맡던 상당한 시행착오가 불가피한데 홍 감독은 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김혜성에게 '유격수 불가' 판정을 내렸다.
키움과 2년 계약을 하며 올 시즌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조급한 모습마저 엿보인다. 그러면 악순환만 거듭될 뿐이다.
장정석 전 감독이 최근 칼럼에서 코치진과 선수 간의 '신뢰'를 강조한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