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일본 NHK 방송이 '동해'로 시작하는 교토(京都)국제고 교가를 그대로 내보낸 것은 "동해 지명을 양국 간 외교 관계가 아닌 문화유산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9일 학계에 따르면 윤지환 한국외국어대 HK 연구교수(아시아문화지리)는 최근 열린 사단법인 동해연구회 주최 제27회 동해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교토국제고 교가를 통해 본 동해 지명 고찰과 디지털시대: 문화유산으로서의 지명이 나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는 정원 131명의 소규모이지만, 지난 8월 일본 전국의 3천603개 학교가 참가해 열린 '제103회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 준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 처음 출전한 봄 대회에서도 16강에 올랐다.
교토국제고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가사로 시작하는 교가를 채택하고 있다.
이 교가는 준결승까지 7차례나 효고(兵庫)현 한신고시엔(阪神甲子園) 구장에서 울려 퍼졌다.
특히 준결승을 생방송한 NHK는 이 교가를 부르는 선수들의 모습과 함께 한국어 교가를 그대로 자막에 실었으며, 그 옆에 일본어 번역본을 함께 내보냈다. 번역본에서도 '일본해(日本海)'가 아닌 '동해(東の海)'로 표기했다.
윤 교수는 "NHK에서 들려준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일부 정치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며 "일본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시작하는 한글 교가는 단번에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고 전했다.
그는 "NHK의 이러한 조치는 우리에게나 일본인에게나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의외로 NHK와 일본 대중의 반응은 담담했다"며 "만일 이 고교의 교가에 동해가 아닌 '독도'나 '위안부' 등의 가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NHK 방송의 교가 송출이 갖는 의미를 정리했다.
우선 영유권이나 과거사 논쟁은 양국 외교와 정치권의 갈등 상황으로 비화하지만, 지명 문제는 정치적 민감함을 동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사회와 NHK는 학교 전통과 문화유산으로서의 '동해' 지명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교토국제고의 교가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지명 문제를 '문화유산' 성격으로 일본 사회에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학교 교가는 재일동포 공동체가 일본 사회에서 지켜왔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동해' 지명은 이러한 공동체적 가치를 드러내는 무형문화유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동해를 둘러싼 국제수로기구(IHO)의 표기 논란이 있었지만, 동해라는 지명의 문화유산 성격을 강조한다면 이러한 논란에서 공신력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IHO는 그동안 전 세계 바다의 경계와 이름을 수록한 책자(S-23)의 제3판(1953년)을 개정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의 '일본해' 단독 표기에 맞서 한국이 1992년부터 '동해' 병기를 줄기차게 요구해 이렇다 할 결론을 짓지 못하다가, 지난해 '고유 숫자로 식별하는 체계'로 명칭을 대신한다고 결정했다.
윤 교수는 "문화유산 성격을 기반으로 사회문화적 정당성을 확보한 지명은 폭넓은 주체에 의해 활용되는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지위를 선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