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책 종류는 가리지 않는데, 마키아벨리의 '전술론'은 늘 갖고 다녀요. '삼국지'나 중국 역사서도 좋아합니다. 읽을수록 도움이 돼요."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의 최원권(42) 감독은 소문난 독서가다.
선수 시절 상무에서 군 복무할 때 습관을 들이기 시작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코치 생활을 할 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면 틈틈이 책을 들었다.
팀을 직접 이끄는 감독이 되면서는 많은 짬을 내기 어려워졌지만, '초보 사령탑'으로 지혜를 쌓는 데에 독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대구의 동계 훈련이 진행 중인 경남 남해에서 만난 최 감독은 "요즘은 여러 책을 많이 읽기보다는 정독하며 사색하려고 한다"며 "선수들, 코치진과도 공유하려고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8월 감독대행으로 시작해 11월부터 정식 사령탑이 돼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감독으로서 저의 확실한 주관과 철학을 만들고자 애쓰는 단계"라며 책이 '살을 붙이는 요소'가 되어준다고 설명했다.
"뇌는 부정적인 것에 더 쉽게 반응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계속 이기거나 골을 넣을 수는 없으니까, 힘든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서로 챙겨주고 벤치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할지를 특히 많이 생각하죠. 책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공유하거나 언어를 선택하는 것에 도움을 받습니다."
2013년 임대 선수로 인연을 맺은 대구에 이듬해 완전 이적하고 2016년 플레잉 코치로 은퇴한 최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대구에서 이어가고 있다.
2군 팀을 지도하다가 2021년부터는 수석 코치로 일했고, 지난해 8월 성적 부진 속에 알렉산더 가마 전 감독이 물러난 이후엔 팀을 이끌었다.
특히 '대행 최원권'의 시간은 '감독 최원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큰 자양분이 된다.
지난 시즌 최 감독이 대행을 맡은 뒤에도 한동안 부진이 이어지면서 대구엔 강등 위기마저 어른거렸다.
경기 후 퇴근길에 성난 팬들을 마주한 최 감독이 눈물을 쏟으며 지켜봐달라는 호소를 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최 감독은 대구가 잘했던 역습 축구를 되살리면서 서서히 반등을 이끌었고, 대구가 파이널 라운드 무패로 잔류를 확정하면서 그는 '대행' 꼬리표를 뗐다.
최 감독은 "그 시간을 통해 저와 선수들, 팬들, 스태프가 모두 단합하며 단단해졌기에 좋은 경험,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는 그런 상황에 대한 '면역력'도 생긴 듯하다"고 돌아봤다.
2023시즌 K리그1·2를 통틀어서 가장 나이가 어린 감독인 그의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에이스' 세징야가 건재한 가운데 지난 시즌 초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 계약을 해지해야 했던 에드가가 다시 영입됐고, 새로운 브라질 선수 바셀루스, 세라토도 가세했으나 주축 수비수 정태욱(전북)이 떠나는 등 누수도 적지 않다.
최 감독은 "현재 우리의 위치는 아래쪽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도 '우리는 잘 쳐줘 봐야 8∼10위'라고 얘기한다. 우리보다 약한 팀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리그 3위에 오른 적도 있으니 그 위인 우승을 목표로 삼고 그걸 위해 달려가야겠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아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겸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와 같은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만큼은 확고하다.
최 감독은 "모든 팀을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어맞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더라도 고개 들고나올 수 있게끔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남해에서 체력 다지기와 몸만들기에 집중한 대구는 4일부터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실전 담금질로 개막 준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3시즌 대구가 보이려는 축구를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한참을 고심하던 최 감독은 '단단한 축구'와 '질식 축구'를 제시했다.
"짧은 말로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우선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 하게 하며 막고 나서 시작하는 게 대구의 축구죠. 시행착오가 있긴 하겠지만, 공수 지표를 지난해보다 모두 끌어 올려서 단단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선수들이 한 단계씩 성장함으로써 팀으로도 더 강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