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7월9일대로'에서 오벨리스크로 행진하는 시민들이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2022.12.1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11세 축구 천재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성장 호르몬 결핍증(GHD) 진단을 받은 것이다. 매달 100달러 이상이 필요한 그의 치료를 철강 노동자인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가 부담하기는 벅찼다. 그때 세계 최고 구단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가 손을 내밀었다. 모든 치료비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구단이 최종 결정을 미루자 카를레스 렉사흐 바르셀로나 기술이사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내용의 냅킨 계약서를 그의 아버지에게 건넨 것은 유명한 일화다. 13살 때 가족과 이별하고 혼자 스페인으로 건너가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라 마시아에 입단한 그는 성인이 되기 전 이미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갖췄고, 약관 22세에 축구선수 최고 명예인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라리가 득점왕 8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6회,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7번의 발롱도르 수상. 리오넬 메시는 스타 군단 FC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빛난 별이었다.
클럽 축구에서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서의 메시는 기대 이하였다. 네 번의 월드컵과 남미 최대 축구 대전인 코파 아메리카에서 그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번번이 우승을 놓쳤다. 그러자 극성 축구 팬들은 메시가 조국인 아르헨티나보다 스페인을 더 사랑한다고 비난했다. 어떤 언론은 그를 '바르셀로나에서만 뛰는 빼초 프리오'라고 했다. 빼초 프리오(pecho frio)는 직역하면 '차가운 가슴'이지만, 큰 게임에서 열정을 다하지 않고, 최상의 경기력이 요구되는 순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수를 가리키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다. 심지어 메시의 외할아버지인 안토니오 쿠치티니조차도 2014년 월드컵 직후 방송에 출연해 "스페인에서는 현기증 나도록 뛰던 메시가 월드컵에서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납득이 안 된다. 다소 게을렀다고 생각한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실축으로 칠레에 패한 메시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메시가 득점왕, 도움왕, MVP를 모두 싹쓸이하고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분위기는 확연히 반전됐다. 카타르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됐다. 35세의 노장 메시의 5번째 월드컵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은 이번 월드컵 우승에 대한 염원보다 캡틴 메시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라고도 했다. 결국 그의 꿈은 18일(현지시간) 이뤄졌다. 첫 경기인 대 사우디아라비아전의 충격적 패배, 결승전에서 음바페의 화려한 킥력에 동점까지 허용했다가 승부차기로 우승을 차지한 한 달간의 각본 없는 드라마는 메시의 라스트 댄스를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장치처럼 보였다.
메시의 소꿉친구였던 아내 안토넬라 로쿠소는 "우리는 메시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은 "지난해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후 메시는 동료들에게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고, 그 말이 큰 힘이 됐다"면서 "메시가 라커룸에서 동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정말 놀랍다"고 했다. 한국의 광화문 광장격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크에 몰려든 시민들은 "메시가 우승컵을 들 수 있어서 기쁘다"며 '메시 만세'를 외쳤다.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메시지만 결국 그의 꿈을 실현하게 한 것은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