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변화가 있다고 하니 감독으로서 기쁘죠. 하지만 일희일비하면 선수들은 분명 과거로 돌아갈 거예요."
홈에서 접전 끝에 역전극을 쓴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은희석 감독은 기쁜 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그는 진행 중인 팀의 '체질 개선' 작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17일 삼성은 홈인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수원 kt를 맞아 66-62로 역전승을 거뒀다.
초반부터 양홍석을 앞세운 kt의 공세에 줄곧 끌려다녔지만 3쿼터 종료 직전 마커스 데릭슨의 3점으로 동점을 이뤘고, 경기 종료 2분 전 기어코 역전에 성공했다.
4쿼터 초반 전열을 재정비한 kt가 양홍석의 연속 5득점으로 7점 차까지 달아났지만 막판까지 끈끈한 수비를 펼쳤던 삼성의 '근성'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오자마자 "매번 어렵네요. 정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우리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겠다는 응집력을 봤다. 큰 수확을 거뒀다고 본다"고 칭찬했다.
올해 4월 부임한 은 감독은 공개 석상에서 줄곧 팀의 체질을 바꾸겠다고 공언해왔다.
지난해 삼성은 한번 점수 차가 벌어지면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은 감독이 부임한 이후 삼성은 정반대의 팀 컬러를 보여주고 있다.
7승 6패의 성적이 보여주듯 항상 대부분 경기에서 이기는 '강팀'은 아니지만 최소한 승패가 쉽게 판가름 나지 않는 팀이 됐다.
지난 13일 삼성과 접전 끝에 81-72로 승리한 고양 캐롯의 김승기 감독도 경기 후 "삼성이 참 끈적끈적해졌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은 감독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변화가 있다는 평을 들어서 감독으로서는 행복한 상황"이라면서도 "지금 만족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쨌든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평가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며 "우린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데, 내가 일희일비해버리면 선수들이 과거로 분명히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으로서 내 마음을 잘 자제해야 한다"며 "수비 측면을 먼저 완성하고, 공격까지 챙기는 팀이 되도록 애쓰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수비를 강조하는 은 감독의 말처럼 삼성은 현재 최소 실점(평균 75점) 1위에 올라 있다.
특히 가드, 포워드 수비수들의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외곽 수비가 빛을 발하고 있다.
삼성을 상대하는 팀은 3점 성공률이 매 경기 28.8%까지 떨어진다. 상대의 3점 성공률을 20%대로 억제하는 건 삼성이 유일하다.
은 감독은 신인 신동혁을 비롯해 상대 에이스를 전담하는 이동엽 등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 외 '공격수'로 분류되는 이들에게도 수비를 요구한다.
은 감독이 콕 집어 수비력을 키우길 바라는 선수는 슈터 역할을 맡은 임동섭이다.
은 감독은 "결국 문제는 수비다. 임동섭이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데 수비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나도 선수 생활을 했다. 안 풀릴 때는 수비를 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며 "희한한 일이지만, 수비가 되면 공격에서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임동섭의 경우 수비가 무너지니까 공격에서도 위축되고 숨어있게 된다"며 "감독이자 농구를 오래 한 선배로서 (임동섭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연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