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언론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발롱도르를 예로 든다. 하지만 그건 목표이지 꿈은 아니다. 내 유일한 꿈은 가족을 파벨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안토니 마테우스 두스 산투스(22·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축구화 끈을 묶을 때마다 '파벨라'(FAVELA)라고 읊조린다.
'흙수저' 안토니는 이미 '꿈'을 이뤘다.
화려한 드리블을 뽐내는 윙어 안토니는 지난 8월 31일 9천500만 유로(약 1천307억원)의 엄청난 이적료를 찍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그의 가족은 지금 브라질 부촌에서 산다.
꿈을 이룬 안토니는 이제 브라질 대표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다.
안토니는 '파벨라'로 불리는 빈민가 출신이라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빈민가에서 보낸 시간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안토니는 15일 스포츠선수 기고전문매체인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힘겨웠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상세하게 담았다.
안토니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지옥에서 온 소년'(The Boy From Hell)이다.
첫 문장도 "나는 지옥에서 태어났다"였다.
안토니는 "내가 태어난 곳은 작은 지옥(Inferninho)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상파울루 빈민가 파벨라"라고 운을 뗀 뒤 "내 집 정문에서 열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약상들이 거래를 했다. 마약 냄새가 창을 넘어와 내 코를 찔렀다. 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이 축구를 봐야 하니, 제발 사라져'라고 외치기도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끔찍했던 기억이 이어졌다.
안토니는 "8∼9살 때 등굣길에서 쓰러져 있는 남자를 봤다. 가까이에서 보니 시체였다"며 "다른 방법은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시체를 뛰어넘어 학교에 갔다"고 떠올렸다.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기억, 11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기억도 안토니는 담담하게 썼다.
'지옥'에서 안토니에게 희망을 준 것은 축구공이었다.
안토니는 "파벨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발 따위는 없다. 축구공 하나면 충분하다. 아이와 어른, 선생님, 버스 기사, 마약상, 폭력배들이 한 곳에 어울려 축구 경기를 했다"며 "아버지는 어렸을 때 진흙에서 축구를 했지만, 나는 아스팔트가 깔린 곳에서 축구했다. 신발이 없어서 발에서 피가 났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드리블에 재능을 보였다"고 했다.
조력자도 있었다.
안토니는 "실제 삼촌은 아니지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른 옆집 아저씨 토니올로는 자신의 와이파이를 쓰게 해줬다. 나는 토니올로 덕에 유튜브를 통해 호나우지뉴, 네이마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기술을 배웠다"고 밝혔다.
풋살팀 그레미우의 관계자는 파벨로 아스팔트 위에서 화려한 드리블로 마약상들을 제치는 8살의 안토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안토니는 그레미우 풋살팀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웠고, 14살 때 상파울루 FC에 입단했다.
18살 때는 상파울루에서 프로 데뷔 골도 넣었다.
안토니는 "상파울루에서 프로 선수가 됐을 때도 나는 파벨라에 살았다. 아버지와 침대도 같이 썼다"며 "2019년 컵대회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뒤, 파벨라의 집으로 가는 데 동네 주민이 '방금 TV에서 당신을 본 건 같은데, 여기서 뭐 하는 건가'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에 삽니다'라고 답했다. 모두가 웃었다.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고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러나 곧 안토니와 가족은 파벨라를 떠났다.
안토니는 만 스무 살이 된 2020년 2월 네덜란드 아약스와 계약했다.
그는 "아약스로 이적한 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고, 내가 혼자 잠들 수 있는 침대도 마련했다. 그리고, 파벨라를 떠났다"고 썼다.
안토니는 올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그의 빠른 성장과 대범한 플레이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안토니는 "나는 지옥에서 태어났다. 총도, 시체도 담담하게 바라봤다. 축구장에서 뛰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며 "그래도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다. 축구를 만났고, 토니올로 삼촌 덕에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영상으로 봤다"고 답했다. 지옥에서, 축구 덕에 희망을 품은 안토니는 꿈을 이뤘다.
안토니가 기분 좋게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10살 때 안토니는 파벨라를 지나는 빨간색 레인지로버를 봤다.
당시 안토니는 어머니에게 "제가 곧 저 차를 사서, 어머니를 태워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웃었다.
안토니는 아약스에 입단한 뒤 빨간색 레인지로버를 샀고, 어머니를 태웠다.
안토니는 "8살 때 레인지로버를 보고 웃었던 어머니는 그 시절 얘기를 꺼내시면 눈물을 흘리신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