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이 아이 이 아이 이 아이 오 업 더 프리미어리그 위 고(Eieieio up the Premier League we go)"
6일(현지시간)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 팬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팀 응원가가 사우샘프턴의 세인트 메리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한때 기성용 선수가 뛰었던 뉴캐슬의 팬들은 전문 응원단장이라도 있는 듯 정확하게 '떼창'을 했다.
처음엔 전체 관중의 10%에 불과한 원정 팬 약 3천명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정도다. 반대편 멀리 끝자리에서도 소음 크기가 경기 내내 90데시벨(dB) 가까이로 측정됐고, 뉴캐슬이 첫 골을 넣었을 때는 100데시벨(dB)이 넘었다. 비가 쏟아졌다가 해가 나길 반복하는 등 영국의 11월 날씨는 변덕스러웠지만 팬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잉글랜드 북쪽에서 차로 6시간 거리를 달려온 팬들의 열기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순위 상위권을 달리는 뉴캐슬의 실력에 눌린 사우샘프턴 팬들은 거의 입을 떼지 못했다. 경기 당시 뉴캐슬은 4위, 사우샘프턴은 17위였다.
워낙에도 EPL 최북단과 최남단 팬들은 응원 문화에 온도차가 있지만, 이날은 더욱 극명하게 대비를 이뤘다. 뉴캐슬이 승기를 굳혀가자 흥에 겨워 흑백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벗어서 흔드는 팬이 늘어난 반면 사우샘프턴 팬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먼저 떠버렸다.
함께 경기를 본 외국 기자들도 뉴캐슬 원정 팬들의 응원에 감탄했다.
이번 경기관람은 우리나라 관광공사 격인 영국관광청이 4∼8일 세계 6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EPL 30주년 기념 견학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의 연합뉴스와 함께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기자들이 각 한 명씩 초청됐다.
경기 후 시내 펍에는 사우샘프턴 팬들이 맥주를 한잔하며 1대 4로 패배해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모습이 보였다. 소도시의 펍은 런던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영국 현지인들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더 좋아 보였다.
세인트 메리 스타디움 주변은 경기 전엔 지역 축제장 같았다. 간이 매장에서 맥주를 팔고 팀의 밴드가 연주하면 팀 마스코트는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사진을 찍어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지난달 취임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사우샘프턴 출신으로 어릴 적 가족들과 경기를 보러오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샘프턴 구단 관계자는 "수낵 총리가 2년 전쯤 재무장관이던 시절 경기를 보러 오고 싶어해서 경호팀이 와서 점검한 적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취재진은 박스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작은 방에서 팬들의 사전 응원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고 나자 정확히 경기 10분 전에 블라인드가 쳐졌다. 술 마시기와 축구경기 관람을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한 엄격한 법규 때문이다.
옆 방에는 사우샘프턴 공격수 제임스 워드 프라우즈의 가족들이 있었다. 등에 'DAD'(아빠)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어린 남자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출전을 확정, '마스크 투혼'을 예고한 손흥민 선수의 가족들도 토트넘 스타디움 박스석에서 경기를 보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샘프턴의 박스석은 '소박한' 편이지만 런던의 부유한 지역에 자리 잡은 부자 구단인 첼시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의 경우 차원이 다르다. '밀레니엄 박스'는 세계적 기업인들의 네트워크의 장이고 유명인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첼시 구단 관계자는 7일 "박스석 가격이 연 수백만파운드(수십억원)에 달한다"며 "전날 아스널전엔 세계적 힙합 가수 켄드릭 라마가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켄드릭 라마는 다음 날 런던에서 공연을 했다.
토트넘은 2019년 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면서 고급 레스토랑과 디제잉 부스가 있는 바 등을 넣었다. 이 곳에선 경기 전후엔 '레전드'라고 불리는 팀의 은퇴 선수들이 와서 손님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첼시의 스탬퍼드 브리지는 낡고 좁아 손 본 지 오래된 시민구장 같은 인상을 준다. 첼시의 몸값 높은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나가는 통로나 기자회견장이 평소 생활에서 머무는 공간 중 가장 허름한 곳일 듯했다.
첼시의 스타디움 가이드는 "여름에 유명 건축가가 몇 차례 다녀간 걸 보면 재건축이 추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선수 대기실은 깨끗하고 반짝거렸다. 원정팀 대기실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유명한 선수들의 유니폼을 진열해놨는데 세계적 스타 데이비드 베컴 옆자리가 손흥민이었다.
가이드는 "원정팀 선수들은 지고서 빨리 떠나고 싶어하기 때문에 샤워기가 10대 있고 첼시 선수들은 느긋하게 승리를 즐기고 싶어하므로 샤워기가 6대만 있다"고 농담을 했다.
박물관에는 8년간 첼시에서 뛴 한국 여자축구 간판 선수 지소연의 흔적도 곳곳에 있었다.
이번 일정 중엔 웸블리 스타디움도 방문했다. EPL 구장은 아니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주요 경기가 치러진다.
그러다 보니 왕실과도 인연이 깊어서 1966년 월드컵 우승 때 젊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시상하는 사진이나 현 찰스 3세 국왕이 과거 다이애나비와 함께 한 사진이 아직 크게 붙어있다. 지금은 잉글랜드축구협회(FA) 회장인 윌리엄 왕세자 전용석과 대기실 등이 있다.
축구 외에도 미식축구, 권투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가 열리고 가수들에게는 꿈의 공연장이다. 스타디움 내부엔 엘튼 존, 퀸, 폴 매카트니,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세계적 가수들이 무대에 오른 모습이 새겨져 있다.
웸블리 박물관에는 2019년 공연한 BTS의 사진과 앨범이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 스파이스 걸스 등의 사인 등과 함께 전시돼있다.
웸블리 스타디움 관계자는 "어느날 BTS가 다시 모여서 웸블리에서 공연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PL은 말 그대로 잉글랜드 축구 클럽들의 리그였는데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 구단주인 러시아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2003년 인수한 가격이 1억4천만파운드(2천177억원)인데 올해 새 구단주인 LA 다저스의 일부 소유주 토드 보얼리 등이 써낸 가격이 42억5천만파운드(6조6천억원)로 수직상승한 한 요인이다.
첼시 관계자는 "EPL의 체급이 완전히 달라졌고 첼시가 수차례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낸 효과"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손흥민 효과를 타고 EPL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관광청 관계자는 축구와 손흥민 선수를 목적으로 영국으로 향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